병들고 아픈 사람은 모두 하나다
우리는 오늘 죽음의 고통을 넘어 희망의 깃발을 들고 이 자리에 섰다. 사람들은 망가진 몸과 지쳐버린 마음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지만, 우리는 진흙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의 연꽃이 핀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한다. 자식이, 남편이, 부인이, 부모님이 병에 걸려 생명을 기약할 수 없는 길에 들어섰지만, 우리는 오늘,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어떻게 큰 희망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나가는지 환자인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앞으로 환자일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당히 보여주고자 한다. 의료의 존재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의사, 약사, 병원 그 모두의 존재 기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약자가 아니라 당당한 하나의 주인인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서든 빈부에 의해, 지위에 의해, 질병에 의해 차별 받지 않으며, 또 차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한다. 병들고 아픈 사람은 모두 하나이다. 우리가 의료현실을 만들고 유지해 간다. 의료소비자로서 우리는 당당한 고객이며, 그만한 서비스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투병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걷어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의료제도,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고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히 낼 것이다. 우리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약국에 가면 약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우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오늘 이런 상식이 무너진 의료현실에서 시회적 상식을 복구할 것을 선언한다. 그래서 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 생명의 버팀목이 되어 함께 사는 의료현실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한다. 우리는 만성백혈병 환자만으로 시작하는 이 첫걸음이 결국 모든 혈액환자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아픈 사람들을 끌어안고, 함께 가는 진정한 환자들의 발걸음이 될 것을 확신하며, 한국백혈병환우회의 창립을 선언한다. 2002년 6월 15일 한국백혈병환우회 |